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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는 시 - [시집 <진혼가鎭魂家>를 읽고] / 김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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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작나무숲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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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鎭魂歌>를 읽고 ]
나는 싸웠습니다 잘 싸웠거나 못 싸웠거나
한 십 년 싸움에 나는 불만이 많습니다 싸움이 미지근했기 때문입니다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고
이 미지근한 싸움에 나는 죽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습니다
서투른 싸움은 그래도 용서받을 것입니다 역사로 부터
그러나 최선을 다하지 않은 싸움 그것은 유죄입니다
역사 앞에서
나는 유죄입니다 적어도 이제까지의 나는
피와 살과 뼈와 근육으로 이루어진 인간 그 본질인 노동
그 노동으로 피가 맑아지고 살이 아름다워지고 뼈가 튼튼해지고 근육이 팽팽해져
굳세고 다부지고 건강하고 아름다워지는 인간, 바로 그 인간의 노동의 성과가
노동하지 않는 비인간들(인간이 아닐진대 그것은 짐승이고 버러지고 기생충일 터)에
약탈당하고 빨리고 털리는 그런 사회에서
그리하여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누르는 자와 눌리는 자, 착취하는 자와 착취당하는 자의 관계로 이루어진
그리하여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주인과 종으로 만나지는 그런 사회에서
싸움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없었습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노동의 적, 짐승이고 버러지이고 기생충인 인간의 적은 죽어야 합니다
짐승이라면 그는 창으로 찔러 죽어야 제격입니다
버러지라면 그는 말발굽에 밟혀 죽어야 제격입니다
기생충이라면 그는 독약으로 독살되어야 제격입니다
그들이 사람의 형상을 했다 해서 딴생각을 가져서는 아니 됩니다
적과의 싸움에서 감상은 죄악입니다
나의 시는 내가 싸운 싸움의 부산물 외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한 싸움이 내 맘에 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쓴 시가 내 맘에 들지 않습니다
하물며 독자의 마음에야!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유고시집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창비,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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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정치와 종교에 연관된 시는 올리지 않으려는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너무 충격적이고 믿기지 않는 고국의 소식에 애도의 마음으로 이 시를 헌정합니다.
별이 되신 그 분을 위해.
- 올 린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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