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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는 시 - [가을 기차] / 노향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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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작나무숲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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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을  기 차


노 향 림




협궤철로엔 바다로 가는 가을행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

연착중일지 모르니 차표나 물리라고

아우성인 사람들

몇 사람은 땅바닥에 멍하니 주저앉아 있고

몇 사람은 철 놓친 여름 모자들을 눌러 쓰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다.

쌜비어꽃들이 햇빛에 벌겋게 덴 손들을

들고 나앉은 울타리 너머로

갈 곳 없는 갈대밭은 녹슨 선로를 딛고 서서

무슨 일일까 궁금한 듯 고개를 내민다.

그 사이로 바람 몇량 끌려가고

지금껏 털끝만한 숨소리조차 내보내지 않는다.

정지된 시간들은 바닥 모를 깊이로 빠져들며

금이 간 얼굴을 들고 망연히 서 있다.

높이 떠오른 하늘이 가늘게 올이 나간

원단처럼 수척해지며 내려와 있다.

제가끔 몸마르며 형형해진 사람들의 눈빛엔

담청색 바다가 숨어 있다.

수인선은 언제나 그 바다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train-1243968__34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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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해에게선 깨진 종소리가 난다> - 창비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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