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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관한 일부 용어들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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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만 되면 어떤 정당을 선택할 지 혼동을 하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정당들의 정책과 후보자의 중점 관심사항들을 알아 지지를 할 것인지 반대할 것인지 입장을 정하고 투표를 해야할 것입니다.

아래는 위키피디아(Wikipedia) 백과사전에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위하여 정치적인 용어들의 설명을 가져와 요약 편집한 것입니다.


캐나다 보수당(Conservative Party of Canada)은 캐나다의 정당이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는 집권 여당이었다.

보수당은 2003년 진보보수당(Progressive Conservative Party of Canada/PC)과 캐나다 동맹(Canadian Alliance/CA)의 합당으로 창당되었다. 두 당은 이전의 거대 정당이던 진보보수당에 뿌리를 두고 있고, 진보보수당은 1867년 캐내다 건국 이래 뿌리를 둔 보수당에 기원을 두고 있다.

진보보수당은 1984년 총선에서 하원 의석의 3분의 2를 휩쓰는 대승을 거두었으나, 그 후로 정책 실패와 당 내부의 분열로 차츰 세력이 약해졌다. 1980년대 후반 서부지역을 기반으로 개혁당이 분리되어 나갔고, 1990년대 초반 퀘벡주에서 분리주의 운동이 거세지면서 1993년 총선에서 진보보수당은 단 2석을 얻는 데 그쳐 군소 정당으로 전락했고, 개혁당은 자유당과 퀘벡 블록에 이어 제 3당이 되었다. 이전 진보보수당 세력은 진보보수당과 개혁당 등으로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유당이 계속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다. 이에 보수세력의 단일화 요구가 커져 개혁당이 개편된 캐나다 동맹과 진보보수당이 2003년 12월 합당하여 새로운 보수당이 탄생하였다. 새 보수당의 당수는 캐나다 동맹의 대표였던 스티븐 하퍼가 선출되었다.

창당 후 곧 치러진 2004년 총선에서 보수당은 의석 수를 늘렸으나, 자유당을 꺾지는 못했다. 2005년 말, 자유당의 폴 마틴 총리가 당의 부패 스캔들로 불신임된 후 2006년 1월 치러진 조기 총선에서 보수당은 하원의석 308석 중 124석을 얻어 제 1당이 되었다. 이에 당수 스티븐 하퍼가 총리로 취임했으나, 다수 의석을 확보하지는 못하여 정권은 불안정한 상태였다. 2008년 10월 총선에서 보수당은 의석을 더 늘려 308석 중 143석을 얻었으나, 역시 다수 의석은 확보하지 못했다. 2015년 10월 총선에서 캐나다 자유당에 정권을 내어주었다.

대체적으로 보수적인 색체를 내세우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중도 우파에 가까운 노선을 표한다. 세계 여러 나라의 중도 우파 계열 정당 연합체인 국제민주연합 회원 정당이다.


신민주당(New Democratic Party)은 캐나다의 정당이다. 사회민주주의 계열 진보 정당으로, 캐나다의 주요 정당 중 가장 좌파에 가깝다.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계열 정당이다. 2011년 총선 이후 공식 야당이 되었다.

1961년 캐나다노동회의(Canadian Labour Congress/Congrès du travail du Canada)와 협동연당(Co-operative Commonwealth Federation/Parti social démocratique du Canada)의 합당으로 창당되어, 협동연당을 이끌던 토미 더글러스 서스캐처원주 주지사가 초대 당수로 취임하였다.

1962년 총선에서 4위, 1965년 총선에서 3위에 올랐으며, 연 차원의 공공 의료보장제도를 추진하여 진보정치운동의 실례로서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토미 더글러스는 캐나다에서 가장 존경받는 정치인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이후에도 하원에서 3~4위의 의석을 꾸준히 확보하여 왔다. 2003년 잭 레이턴이 당수로 취임하였다. 2008년 총선에서는 8석의 의석을 추가하여 총 37석의 의석을 확보하여 보수당·자유당·퀘벡 블록에 이어 제4당의 자리에 올랐다. 연정부에서 정권을 차지한 적은 없으나, 일부 지정부에서 정국을 주도해왔다. 온타리오주와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노바스코샤주, 매니토바주에서 집권했던 적이 있으며, 특히 매니토바 주에서는 1999년 이래 계속 집권 정당이다.

2011년 신민주당은 연 의회에서 자유당·퀘벡 블록과 연합하여 보수당 소속의 스티븐 하퍼 총리를 불신임하였다. 이에 따라 치러진 총선에서 잭 레이턴이 이끄는 신민주당은 다른 당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높은 인기를 누릴 수 있어 사상 처음으로 캐나다 정권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올 정도로까지 발전하였다. 총선 결과 보수당이 다수 의석을 얻어 신민주당의 정권 획득은 실패했으나, 103석을 확보하며 사상 처음으로 제1 야당으로 부상하였다. 그러나 암으로 투병하던 당수 잭 레이턴은 건강이 악화되어 제1 야당 대표가 된 지 3개월 여 만에 사망하였다.


캐나다 자유당(Liberal Party of Canada)은 캐나다의 정당이다. 1867년 캐나다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 절반 이상의 기간 동안 정부를 구성한 캐나다에서 가장 오랫동안 집권한 정당이다. 특히 20세기에 69년 간이나 집권, 선진 민주 국가에서는 가장 집권 기록이 길다. 2006년~2015년 한때는 야당이었다.

19세기 전반부터 결성되었던 여러 정당들이 1867년 캐나다 건국(영국 자치령)과 함께 자유당으로 출범한 것이 기원이다. 1873년부터 1878년까지 알렉산더 매켄지가 처음으로 자유당 정부를 구성했다. 1896년 윌프리드 로리에 정권 출범 이후 여러 차례 구 캐나다 보수당(후에 진보보수당으로 개편)과 번갈아가며 정권을 담당했는데, 자유당이 정권을 잡은 기간이 더 길었다.

자유당은 보수당에 비해 영국보다는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면서도 극단적인 정책을 취하지 않고 대체적으로 중도적인 입장을 유지하여 이념과 지역에 관계없이 폭넓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도 자유당은 대부분의 기간 동안 정권을 담당했으며, 피에르 엘리오트 트뤼도 총리는 약 15년 간이나 집권했다. 그러나 자유당과 트뤼도 총리에 대한 인기도 떨어져 그는 1984년 사임했으며, 곧 치러진 총선에서 크게 패하여 진보보수당에 정권을 넘겨주었다. 1993년 총선에서 다시 승리하여 장 크레티앵 총재가 총리가 되며 다시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는 전보다 원만하지 못했고 경제 정책 실패 등으로 인기가 높지는 않았는데도 진보보수당 등 타 정당의 분열로 계속 제 1석을 유지하며 정권을 잡고 있었다. 보수 세력이 새로운 보수당으로 개편된 후, 2006년 총선에서 자유당은 보수당에 패해 정권을 넘겨주었다.

2008년 10월 총선에서 자유당은 이전보다 더 적은 의석을 얻어 여당인 보수당과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그러나 보수당이 다수 의석을 점유하지는 못하자 자유당은 다른 야당과 합쳐 보수당의 스티븐 하퍼 총리를 불신임하는 사태를 일으켰으나, 이러한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총선 패배와 이 사태에 따른 책임을 지고 스테판 디옹 당 대표는 사임하여 후임 당수로 마이클 이그나티에프가 취임하였다. 2011년, 자유당은 다시 스티븐 하퍼 총리 불신임을 시도하였고, 다른 야당과 함께 의회에서 불신임안이 가결되어 조기 총선을 치르게 되었다. 그러나 조기 총선 결과, 여당인 보수당은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하며 다수의석으로 지위를 공고히 한 반면, 자유당은 34석을 얻는 데 그쳐 신민주당에도 뒤지는 원내 제3 정당으로 추락하게 되었다. 이 패배에 따른 책임으로 마이클 이그나티에프도 당수직을 사임하였다.

2013년 대표 경선에서 피에르 엘리오트 트뤼도 전총리의 아들인 쥐스탱 트뤼도가 선출되었다. 쥐스탱 트뤼도가 이끄는 자유당은 2015년 총선 전 하원 의석이 36석에 불과했으나, 총선에서 184석을 획득하는 대승을 거두어 과반 의석을 확보하였으며, 이에 따라 쥐스탱 트뤼도가 총리로 취임하면서 10년 만에 다시 여당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캐나다 녹색당(Green Party of Canada)은 캐나다의 녹색 정치 정당이다. 지난 2011년 캐나다 총선에서 창당 이후 최초로 엘리자베스 메이가 지역구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원내정당이 되었다. 2015년 캐나다 총선에서도 하원 1석을 유지해 원내정당이 되었다.


캐나다 국민당(the People’s Party of Canada, 이하 PPC)은 캐나다의 연 정당이다. 그 정당은 맥심 버니어(Maxime Bernier)가 보수당을 탈당한 직후인 2018년 9월 14일에 버니어(Bernier)에 의해 결성되었다. 그 정당은 보수(conservative), 자유주의(libertarian), 포퓰리즘(populist), 고전주의(classical liberal), 우파(right-wing)라고 일컬어 왔다. 캐나다 국민당(PPC)은 캐나다의 338개 선거구들(ridings)에 모두 선거구 획정 기구(EDA: electoral district associations)를 구성했으며 2019년 5월 7일부터 13일까지 지명된 2019년 캐나다 연선거에서 전체 후보를 선출할 계획이다. 

전 내각 장관(a former cabinet minister)이자 캐나다 보수당(the Conservative Party of Canada)의 지도자 후보였던 버니어(Bernier)는 2006년부터 보스 선거구(the riding of Beauce)를 대표해 온 이 당의 유일한 국회의원이다.


보수주의(Conservatism)는 문화와 문명의 맥락에서 전통적인 사회 제도를 촉진하는 정치 사회 철학이다. 보수주의의 중심 이념은 전통, 인간의 불완전성, 유기적 사회, 계급, 권위와 재산권을 포함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사회 안정과 연속성을 강조하기 위해 종교, 의회 정부, 재산권 등 다양한 제도를 보존하려고 한다. 보다 전통적인 요소들, 즉 반응론자들(reactionaries)은 모더니즘(modernism)에 반대하고 "사물들이 있던 식"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추구한다. 

정치적 맥락에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1818년 프랑스혁명(the French Revolution)의 정책을 후퇴시키려는 부르봉 복원 기간(the period of Bourbon Restoration) 동안 프랑수아-르네 데 샤토우브리앙(François-René de Chateaubriand)에서 비롯되었다. 역사적으로 우익 정치와 연관되어, 이 용어는 이후 광범위한 관점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주어진 장소와 시간에 있어서 전통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것에 따라 보수의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에 보수주의로 간주되는 정책들은 단 한 세트도 없다. 따라서 세계 각지의 보수주의자들은 각각 각자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으며, 광범위한 이슈에 대해 의견이 다를 수 있다. 프랑스혁명(the French Revolution)에 반대하면서도 미국 혁명(the American Revolution)을 지지했던 18세기 정치인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는 1790년대 영국 보수주의의 주요 이론가(the main theorists of conservatism)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다.

1959년 영국 보수당의 퀸틴 호그(Quintin Hogg) 의장에 따르면, 보수주의(Conservatism)는 태도, 끊임없는 힘, 자유사회의 발전에서 시대를 초월한 기능을 수행하며, 인간성 자체의 깊고 영구적인 요구조건에 대응한 철학이라 할 수 없다. 전통에 기초한 보수주의 정의와는 달리, 코리 로빈(Corey Robin)과 같은 일부 정치 이론가들(political theorists)은 주로 사회 경제적 불평등의 일반적 어라는 관점에서 보수주의를 정의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수주의는 전통적인 제도들을 지탱하기 위한 시도라기보다는 권력을 가지고, 위협을 받고, 그것을 되찾으려고 하는, 느껴진 경험에 대한 이론전 연출된 명상(a meditation)이다.


자유주의(Libertarianism, 라틴어로 freedom라는 뜻)는 자유를 핵심원리로 지지하는 정치철학과 운동의 집합체다. 자유주의자들은 선택의 자유(freedom of choice), 자발적 결사(voluntary association), 개인의 판단(individual judgment)을 강조하면서 정치적 자유(political freedom)와 자치(autonomy)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자유주의자들은 권위(authority)와 국가 권력(state power)에 대한 회의론(a skepticism)을 공유하지만, 기존의 정치와 경제 체제에 대한 반대의 범위를 갈라놓는다. 자유주의 사상의 여러 학교들은 국가 권력(state power)과 사적 권력(private power)의 합법적 기능에 관한 다양한 견해를 제시하며, 종종 강압적인 사회 제도(coercive social institutions)의 제한(restriction)이나 해체(dissolution)를 요구한다. 

자유주의란 일종의 좌파 정치(left-wing politics)의 한 형태를 뜻하는 용어가 될 수 있다. 그러한 좌파적 이데올로기(left-libertarian ideologies)는 자본주의(capitalism)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권(private ownership)을 폐지하거나, 
사유 재산을 자유와 자유에 대한 장벽으로 간주하면서 공동 또는 협력적 소유권과 관리에 찬성하여 그들의 권한(purview)이나 효과(effects)를 제한하려고 한다.

좌파 자유주의 이념(Left-libertarian ideologies)에는 무정부-공산주의(anarcho-communism), 무정부-신디칼리즘(anarcho-syndicalism), 이기주의(egoism), 상호주의(mutualism) 등이 있으며, 다른 많은 반-가부장 주의자들(anti-paternalist), 경제적 평등주의(economic egalitarianism)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좌파 사상 학교들(New Left schools)이 있다. 무정부 자본주의(anarcho-capitalism)와 무정부주의(minarchism)와 같은 현대의 우파 자유주의 이념(Modern right-libertarian ideologies)은 20세기 중반 자유주의(libertarian)라는 단어 대신 자유임 자본주의(laissez-faire capitalism)라는 단어 대신 토지, 인프라(infrastructure), 천연자원(natural resources)과 같은 강력한 사유재산권(private property rights)을 옹호하기 위해 공동 채택했다.


포퓰리즘(populism, 대중영합주의)은 "국민"의 사상을 강조하는 정치적 입장을 말하며, 종종 이 집단을 "정예층(the elite)"에 대항하여 비교하기도 한다. 이 용어는 19세기에 발달하여, 자술로 선택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 이후 다양한 정치인과 정당, 운동에 적용되어 왔다. 정치학과 다른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포퓰리즘에 대한 여러 가지 다른 정의가 사용되었고, 일부 학자들은 포퓰리즘이라는 용어를 전면적으로 거부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포퓰리즘을 해석하기 위한 일반적인 틀은 사상적 접근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포퓰리즘을 도덕적으로 좋은 세력으로 제시하고 부패하고 자기를 서기는 것으로 묘사되는 "엘리트(the elite)"와 대조되는 이념으로 정의하고 있다. 대중 주의자들(Populists)은 "국민(the people)"을 정의하는 법에는 차이가 있지만, 계급, 민족, 또는 국가 노선을 따라 그 기반이 될 수 있다. 대중 주의자들(Populists)은 전형적으로 "엘리트(the elite)"를 "국민"의 이익보다 더 높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미디어 설립으로 구성하고, 동질적인 실체로 묘사되고, 그들 자신의 이익을 배치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종종 대기업, 외국, 이민자들과 같은 다른 그룹의 이익으로 나타낸다. 대중 주의자 정당과 사회 운동은 자신을 "국민의 목소리(voice of the people)"로 내세우는 카리스마적이거나 지배적인 인물들에 의해 주도되는 경우가 많다. 이념적 접근법에 따르면 포퓰리즘은 종종 민족주의(nationalism), 자유주의(liberalism), 사회주의(socialism)와 같은 다른 이념과 결합된다. 따라서 좌파 정치 스펙트럼(left–right political spectrum)을 따라 다양한 위치에서 대중을 찾을 수 있으며 좌파 포퓰리즘(left-wing populism)과 우파 포퓰리즘(right-wing populism)이 공존하고 있다.

사회과학(social sciences)의 다른 학자들은 포퓰리즘이라는 용어를 다르게 정의했다. 미국 역사학자들에 의해 사용된 인기 기관의 정의에 따르면, 포퓰리즘은 정치적 의사결정에 있어서 대중의 참여를 의미한다. 정치학자 에르네스토 라클라우(Ernesto Laclau)와 관련된 접근은 포퓰리즘을 소외된 집단(marginalised groups)이 지배적인 권력구조(dominant power structures)에 도전하는 해적 사회세력(an emancipatory social force)으로 제시한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초인플레이션(hyperinflation)과 긴급조치(emergency measures)를 초래하면서 외채(foreign loans)에 의해 자금을 조달하는 상당한 공공 지출을 하는 정부를 지칭하여 이 용어를 사용해 왔다. 대중 담론(이 용어가 종종 경멸적으로 사용되어 온)에서는 복잡한 질문에 지나치게 단순하게 대답하는 정치인들을 매우 감정적인 식으로(in a highly emotional manner) 묘사하거나 기회주의적인 법(opportunism)으로 묘사하는 것에 대해 최선의 행동 침으로 이성적인 고려(rational consideration) 없이 유권자들을 기쁘게 하려는 정치인들을 특징짓기 위해 때때로 선동(demagogy)과 동의어처럼 사용되어 왔다.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라는 용어는 19세기 후반에 민주주의의 촉진과 함께 사용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국민당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고, 러시아 제국에서는 농경 사회주의(the agrarian socialist) 나로드니크 운동(Narodnik movement)과 연계되어 있었다. 1960년대에는 서구 국가들의 사회과학자들 사이에서 이 용어가 점점 인기를 끌었고, 이후 20세기에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활동하는 여러 정당에 적용되었다. 21세기에는 기성 정당에 도전한 좌파(left-wing), 우파(right-wing), 중도파(centrist)의 범위를 기술하기 위해 정치적 담론, 특히 아메리카와 유럽에서 이 용어가 점점 보편화되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집권할 때, 민중 주의자들은 종종 "국민의 의지(will of the people)"에 적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언론이나 사법부와 같은 독립적 기관을 훼손하기 때문에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


고전적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는 경제적 자유에 중점을 두고 법 치하에서 시민적 자유를 옹호하는 정치적 이념이자 자유주의의 한 분야다. 경제 자유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고전적 자유주의는 19세기 초에 발전하여, 도시화와 유럽과 미국의 산업 혁명에 대한 대응으로서 이전 세기의 사상을 구축하였다. 고전적 자유주의에 기여한 사상을 가진 주목할 만한 개인으로는 존 로크(John Locke), 장 바티스트 세이(Jean-Baptiste Say), 토마스 로버트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 데이비드 리카르도(David Ricardo)가 있다. 그것은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국부론, The Wealth of Nations>의 제1권에서 내세웠던 고전적인 경제사상(classical economic)과 자연법(natural law), 실용주의(utilitarianism), 진보(progress)에 대한 믿음을 그렸다. 고전적 자유주의라는 용어는 초기 19세기 자유주의(earlier 19th-century liberalism)와 사회적 자유주의(social liberalism)를 구분하기 위해 종종 회고적으로 적용되어 왔다.


우익 정치(Right-wing politics)는 어떤 사회적 질서(social orders)와 계층 구조(hierarchies)가 필연적이거나 자연적이거나 정상적이거나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자연법(natural law), 경제(economics) 또는 전통(tradition)에 근거하여 이 위치를 지지한다. 계층(hierarchy)과 불평등(inequality)은 전통적인 사회적 차이(traditional social differences) 또는 시장 경제의 경쟁의 당연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우익(right-wing)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정당 또는 체제의 보수적(conservative) 또는 반동적 부분(reactionary section)"을 지칭할 수 있다. 

"좌익(Left)"과 "우익(Right)"이라는 정치적 용어는 프랑스혁명(1789~1799) 때 처음 사용되었고, 프랑스 의회에서 좌석 배치를 언급하였다. 의회 의장 오른쪽에 앉은 사람들은 군주주의 구정권(the monarchist Old Regime)의 제도들을 폭넓게 지지하였다. 프랑스의 원래 권리(Right)는 "좌익(Left)"에 대한 반발로 형성되었고, 계급(hierarchy), 전통(tradition), 교권주의(clericalism, 성직자의 정치 세력)를 지지하는 정치인들을 구성했다. 라 드로이트(la droite, 우익)라는 표현은 1815년 급진 왕당파(the Ultra-royalists)가 군주제 회복(the restoration of the monarchy)에게 적용되면서 프랑스에서도 두드러지게 되었다. 영어권 국가 국민들은 20세기까지 '우익(right)'과 '좌익(left)'이라는 용어를 자국 정치에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우파는 전통적인 보수주의(traditional conservatives), 군주주의(monarchists), 반동주의(reactionaries)에서 비롯되었지만, 극우주의(extreme right-wing)라는 용어는 파시즘(fascism), 나치즘(Nazism), 인종적 우월주의(racial supremacy) 등의 운동에도 적용되었다. 1830년대부터 1880년대까지 서구 사회 계급구조(the Western world of social class structure)와 경제계에 귀족(nobility)과 귀족에서 자본주의(aristocracy towards capitalism)로 탈바꿈하는 변화가 있었다. 자본주의를 향한 이러한 일반적인 경제 변화는 자본주의(capitalism)를 지지하는 것으로 응답한 영국 보수당(the British Conservative Party)과 같은 중도우파 운동(centre-right movements)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에서는 우파는 경제 보수(economic conservatives)와 사회 보수(social conservatives) 모두를 포함한다. 유럽에서는 경제 보수(economic conservatives)는 대개 자유주의자(liberal)로 간주되고 우파는 민족주의(nationalists), 이민에 대한 선천적 반대(nativist opposition to immigration), 종교적인 보수주의(religious conservatives), 그리고 보수주의(conservatives)와 현대 자본주의(contemporary capitalism)에 내재된 이기주의(selfishness) 및 지나친 물질주의(excessive materialism)에 반대하는 파시스트(fascists) 등 반자본주의 정서(anti-capitalist sentiments)를 가진 역사적으로 우파 운동(right-wing movements)의 현저한 존재를 포함한다.


좌익 정치(Left-wing politics)는 사회적 평등(social equality)과 평등주의(egalitarianism)를 지지하는데, 종종 사회적 위계(social hierarchy)에 반대한다. 일반적으로 그 신봉자들이 타인에 비해 불리한 것으로 인식하는 사회인의 걱정과 감소 또는 폐지되어야 할 부당한 불평등(unjustified inequalities)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포함한다. 좌파라는 용어는 또한 "정당이나 제도의 급진적, 개혁적 또는 사회주의적 부분"을 지칭할 수 있다.

'좌익(Left)'과 '우익(Right)'이라는 정치 용어는 프랑스혁명(1789~1799) 때 프랑스 에스테이트 장군(Estates General)의 좌석 배치를 언급하면서 만들어졌다. 왼쪽에 앉은 사람들은 대체로 군주제(the monarchy)에 반대하고 공화정 수립(the creation of a republic)과 세속화(secularization)를 포함한 혁명(revolution)을 지지한 반면, 우익은 구시대의 전통적인 제도들(the traditional institutions of the Old Regime)을 지지했다. "좌파"라는 용어의 사용은 1815년 프랑스 왕정(the French monarchy)이 복원된 이후 "독립주의자(Independents)"에 적용되면서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19세기 후반에 좌우에 '윙(wing)'이라는 말이 붙었는데, 대개는 폄하 의도를 가지고 있고, 종교적 또는 정치적 견해에 정통이 아닌(unorthodox) 사람들에게는 '좌익'이라는 말이 적용되었다. 

이 용어는 이후 여러 운동, 특히 18세기 프랑스 혁명기의 공화주의(republicanism), 19세기와 20세기에는 사회주의(socialism), 공산주의(communism), 무정부주의(anarchism), 사회민주주의(social democracy) 등에 적용되었다. 이후 좌파라는 용어는 민권운동(civil rights movements), 여권운동(feminist movements), 반전운동(anti-war movements), 환경운동(environmental movements) 등 광범위한 운동들과 광범위한 정당들에 적용되었다. 전 경제학과 교수 베리 크락크(Barry Clark)에 따르면, "좌파 주의자들(leftists)은 개인의 지위와 권력, 부의 지나친 차이가 없어져야 번영할 수 있는 협력적이고 상호 존중적인 관계를 맺을 때 인간 발전이 번창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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